[이종구의 디지털복지②] 디지털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조건이다

사설/칼럼/기고 / 박기영 기자 / 2026-10-19 09: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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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을 사용하지 못하는 순간 일상의 선택지가 줄어든다
▲ 이종구 디지털콘텐츠그룹·SNS소통연구소 대표
디지털을 사용하지 못하면 생활 자체가 흔들린다 "이제는 은행도 혼자 못 가고, 병원도 혼자 못 가고, 뭘 하려면 다 스마트폰을 써야 한다는데, 그걸 못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세상이 됐다."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말이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오늘 대한민국의 실제 풍경이다. 디지털은 이미 '선택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사용하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는 환경'이 되었다. 그 환경 안에서 누군가는 살아가고, 누군가는 점점 밀려나고 있다.


생존 조건이 달라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은행 창구에서 직원에게 말을 걸면 됐다. 병원에 전화 한 통이면 예약이 됐다. 버스를 타려면 현금이면 충분했다. 공공서비스는 주민센터 방문으로 해결됐다. 지금은 다르다. 은행 창구는 줄어들고 ATM이 그 자리를 채웠다. 병원 예약은 앱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 됐다. 버스 결제는 교통카드와 QR코드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각종 지원 신청은 온라인 포털을 통해 진행된다. 식당에서는 키오스크가 직원을 대신한다. 이 변화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실제로 편리하다. 그러나 동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살던 방식 그대로 살 수 없게 된 사회'가 만들어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3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71.3%에 불과하다. 

 

열 명 중 세 명은 디지털 환경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다. '불편'이 아니라 '배제'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단순히 불편한 수준이라면,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격차는 이미 생활의 여러 층위에서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


정보 배제. 공공기관의 복지 공지, 지원 사업 안내, 의료 정보 대부분이 온라인을 통해 전달된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못하면 '있는 줄도 몰랐다'는 상황이 반복된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접근하지 못해서 놓치는 것이다.

 

▲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그린 이미지입니다.
서비스 배제. 어떤 취약계층은 복지 급여 신청을 앱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 포기한다. 어떤 소상공인은 공공 지원 사업 신청을 하지 못해 기회를 잃었다. 디지털 접근 능력이 곧 서비스 접근 능력이 된 세상이다.


경제 배제. 모바일 금융을 사용하지 못하면 소액 이체조차 은행 창구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 온라인 쇼핑몰과 배달 앱을 사용할 수 없으면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더 불편하게 구매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역량의 차이가 경제적 기회와 비용의 차이를 만든다. 사회적 고립. 가족과의 영상통화, 커뮤니티 참여, 사회 정보 획득 모두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불가능해지면 고립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진행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연결된다.

 

정보를 얻지 못하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면 경제 활동이 좁아지고, 경제 활동이 좁아지면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진다. 결국 디지털 격차는 삶 전체를 조여드는 구조적 배제로 이어진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유 "배우면 되지 않느냐", "익숙해지면 된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말은 현실과 맞닿지 않는다.


지금의 고령층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세대가 아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필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회 전체가 디지털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연습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강의장에서는 이해했는데 집에 돌아가면 다시 막힌다. 

 

새로운 앱이 나오고, 화면이 바뀌고, 절차가 달라진다. 한 번 배운 것으로는 계속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가기 어렵다.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다시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교육은 결국 일회성으로 끝난다. 디지털 소외는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준비 부족이 만든 결과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그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과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디지털복지가 필요한 이유 이 문제를 스마트폰 교육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아직 많다. 하지만 현장 경험은 그 생각이 틀렸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필요한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 생활 속에서 반복 연습할 수 있는 환경, 이것이 함께 있어야 디지털이 실제 삶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복지다. 

 

▲ 본 이미지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그린 이미지입니다.
디지털복지는 기술 교육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누구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기반이다. 병원 예약을 혼자 할 수 있고, 금융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고,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사람과 연결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립이 가능해지고 삶의 질이 유지된다.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정책의 기준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못해 공공서비스·복지·의료에서 배제되는 것은 기본권 침해와 다르지 않다. 

 

디지털 접근과 활용 능력을 소득·의료·주거와 동등한 복지 기본 조건으로 명문화하고, 이를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은행이 창구를 줄이고, 공공기관이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전환할 때는 반드시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대안을 함께 마련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모두를 위한 디지털' 프로그램처럼, 디지털 전환과 포용 지원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일회성 강의가 아닌, 생활 반경 안에서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역 단위 거점이 필요하다. 가르치고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다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 이종구의 디지털복지 연재

① 왜 지금 ‘디지털복지’인가
② 디지털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조건이다
③ 디지털 소외,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④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일상이다
⑤ 기기를 줬는데 왜 삶은 달라지지 않았나
⑥ 복지가 있어도 접근하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다
⑦ 디지털 격차가 새로운 빈곤을 만든다
⑧ 초고령사회, 디지털복지는 국가 과제다
⑨ 스마트폰 하나가 삶의 주도권을 바꾼다
⑩ AI 시대, 복지도 디지털을 전제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⑪ 디지털복지는 교육사업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다
⑫ 디지털복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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