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유지와 미래세대 투자 사이 재정 부담…한국도 지속가능한 성장전략 필요
유럽 투자·수출시장 불확실성 속 AI·기후테크 등 혁신기업의 새로운 기회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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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위 현장. 교육과 생활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국가재정과 세대 간 불평등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사진출처=FreCha·Wikimedia Commons(CC BY-SA 4.0). |
문제는 이러한 불안이 프랑스 내부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재정·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의 수출기업은 물론 해외 투자와 기술협력에 의존하는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5일 세계경제 포커스 보고서 「최근 프랑스 시위의 주요 쟁점과 시사점」을 내놓고, 프랑스 시위의 배경과 경제·사회적 구조 문제, 한국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을 분석했다.
연구보고서는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교육 인프라와 생활비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연금제도를 비롯한 재정 부담과 장기 저성장, 소득·자산·세대 간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기존 복지지출을 유지하면서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재정적 딜레마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정책적 질문을 던진다. 고령화에 대응한 노인복지와 청년 고용·주거 지원을 확대하는 동시에 AI와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성장동력 확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교육에서 시작된 시위, 국가재정과 경제구조 문제로 확산
프랑스 시위는 지난 9월 파리 근교 고등학교에서 교원 부족과 과밀학급, 노후 교육시설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학교 봉쇄로 시작됐다. 이후 학부모와 교원단체, 노동조합, 농민단체 등이 가세하면서 임금 인상과 생활비 부담 완화, 공공서비스 확대를 요구하는 전국적 시위로 번졌다.
지난 10월 17일 시위에는 프랑스 내무부 집계 기준 약 55만 명이 참여했으며, 24일에는 41만 명, 31일에는 32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재정정책과 공공서비스 개혁을 둘러싼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프랑스의 2026년 경제성장률을 0.4%로 전망하고, 국가부채가 2분기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19%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재정적자는 GDP 대비 5.4%로 예상돼 정부가 교육과 복지, 생활비 지원을 확대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상황이다.
특히 프랑스는 2024년 기준 전체 공공지출에서 노령연금 관련 지출이 23.4%를 차지한 반면 교육 관련 지출은 8.9%에 그쳤다. 고령층의 사회보장을 유지하면서 청년세대를 위한 교육과 일자리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구조적 부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기에 청년실업률 22%, 빈곤율 15.4%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까지 겹치면서 시위는 정부의 개별 정책을 넘어 성장과 분배, 세대 간 부담 배분을 둘러싼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발 금융 불안, 한국 수출·투자시장으로 번질 가능성
프랑스의 경제 불안이 한국에 직접적인 위기를 초래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프랑스의 재정 악화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유럽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 경제에도 간접적인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선 프랑스 국채금리 상승과 유럽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글로벌 투자자의 위험자산 선호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주식·채권시장과 환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실물경제에서는 유럽 소비와 기업 투자가 위축될 경우 자동차와 전자제품, 산업기계 등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럽 현지 기업과 기술협력이나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중소기업 역시 사업 일정과 투자계획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자금 조달과 해외 판로 확보가 중요한 성장 초기 스타트업은 글로벌 투자심리 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해외 투자유치가 지연되거나 현지 기업의 신규 사업 발주가 축소될 경우 기업의 성장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이는 프랑스 시위가 한국 중소벤처기업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랑스의 정치·재정 불안이 유럽 전반의 투자와 소비 위축으로 연결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파급 경로에 대한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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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과학기술정통부 카드뉴스 중 |
유럽의 경제 불확실성이 국내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정부의 AI·기후테크 육성정책 확대는 새로운 성장 기회로 주목된다.
정부는 202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안에 AI 대전환 분야 9조4천억 원을 편성했다. 전년보다 약 85% 증가한 규모로, AI데이터센터와 피지컬AI, 차세대 반도체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7,956억 원을 배정했다. 첨단기술 확보 분야에도 12조4천억 원을 편성해 미래에너지와 우주항공, 차세대 전략기술 개발을 추진한다.
중소벤처기업부도 AI 스타트업의 기술개발과 사업화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AI 전문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AI 인재 실증형 창업패키지'를 추진하고, 인재 채용과 기술 실증을 연계한 기업에 최대 2억 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기후테크 분야에서도 지원체계가 구체화되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해 발표한 '기후테크 혁신 스타트업 레벨업 전략'을 통해 공정혁신과 자원순환 기술을 중점 육성하고, 탄소중립 사업화에 최대 2억 원, 기술 실증에 최대 6억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수자원공사의 K-테스트베드와 연계한 기술 검증, 대기업과의 공동 사업화, 딥테크 팁스 및 해외진출 지원 등을 통해 기후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유럽의 저성장과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국내 혁신기업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유럽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과 에너지 비용 절감,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기술 도입을 확대할 경우 AI 자동화와 스마트 제조, 에너지 효율화, 자원순환 분야의 한국 스타트업에도 시장 진출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예산 편성과 지원계획이 곧바로 기업의 투자유치나 해외 매출 증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 실증과 인증, 현지 수요기업 발굴, 후속 투자 확보까지 연결하는 사업화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노인·청년 지원 확대 속 미래산업 투자 균형 과제
프랑스의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복지지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청년세대 지원, 미래 성장산업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재정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있다.
한국은 이미 노인복지와 청년 지원에 상당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2027년 예산안에서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289조 원으로 전년보다 9.3% 증가했다. 교육 분야는 110조7천억 원, 연구개발(R&D)은 39조5천억 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는 41조2천억 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한국이 복지 확대와 미래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프랑스의 재정위기를 근거로 한국의 복지정책이 과도하다고 단정하거나 동일한 위기가 임박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연구보고서 역시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상대적으로 건전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고정지출 증가와 연금개혁 과정의 세대 간 부담 조정, 장기적인 성장동력 확보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AI와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미래 유망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재정 기반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고,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은
프랑스의 대규모 시위는 교육과 생활비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그 이면에는 저성장과 국가부채, 세대 간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여력이 약화될수록 복지 유지와 미래세대 투자 사이의 선택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프랑스와 경제구조 및 재정 여건이 다르지만 고령화와 청년 고용,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복지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동시에 미래산업에 대한 투자가 실제 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역시 유럽의 금융·투자 환경 변화를 면밀히 살피면서 수출시장 다변화와 안정적인 자금 조달, 현지 기술협력 확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결국 프랑스발 경제 불안의 나비효과는 한국에 반드시 위기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럽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국내 기업에 새로운 부담을 줄 수도 있지만, 생산성 향상과 에너지 전환, 첨단기술 수요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의 위기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복지와 성장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혁신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재정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외부 경제 충격에 대응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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