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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조달청 |
공공조달 시장에 들어서려는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의 문턱이 한꺼번에 낮아지고 있다. 입찰 때마다 떼던 기업확인서를 내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리고, 기술력을 인정받은 제품에는 공공판로가 열리며, 최저가가 아닌 적정가격을 보장한다는 원칙도 다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와 조달청이 지난 26일과 27일 잇달아 내놓은 발표를 엮어 보면 서류 부담은 줄이고 기술과 품질에는 제값을 쳐주는 방향으로 공공조달 제도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공기관을 첫 고객으로 삼으려는 초기 기술기업에는 놓치기 아까운 변화다.
행정안전부(장관 윤호중)는 창업기업확인서, 중견기업확인서, 여성기업확인서, 장애인기업확인서 등 4종을 행정정보 공동이용 대상에 넣어 기업의 서류 제출 불편을 덜겠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오는 12월까지 공동이용 대상 행정정보 현황 고시 개정을 마칠 계획이다.
고시 개정이 끝나면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은 공동이용 신청 절차를 거쳐 기업에서 확인서를 받지 않고도 행정정보 공동이용시스템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은 공동이용에 동의하는 것만으로 신청을 마칠 수 있다.
기업들은 공공조달 우선구매 제도나 적격심사 가점 증빙, 연구개발과 정책자금 지원 신청 등에서 확인서를 매번 발급받아 내 왔다. 현재 공동이용이 가능한 행정정보는 사업자등록증명, 납세증명서, 중소기업확인서, 벤처기업확인서 등 181종이며 이번에 4종이 더해진다.
다만 실제 서류 제출이 생략되는 시점은 기관마다 다를 수 있다. 고시 개정은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단계이고, 각 기관이 행정안전부에 공동이용을 신청해 승인을 받아야 최종 적용된다.
황규철 행정안전부 인공지능정부실장은 “기업이 공공입찰이나 정부 사업에 참여할 때마다 같은 서류를 매번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던 불편을 해소하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서류 문턱을 넘은 기업이 다음으로 마주하는 것은 판로다. 조달청(청장 백승보)은 27일 정부대전청사 대회의실에서 올해 세 번째 우수조달물품 지정증서 수여식을 열고 45개 기업에 증서를 수여했다.
이번 회차에는 264개 제품이 신청해 외부 전문가의 기술·품질 심사를 거쳐 46개 제품이 우수제품으로 지정됐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교통시스템, 전기화재를 막는 아크 사전 감지·차단기, 건축물 에너지를 줄이는 이중단열 외벽시스템 등 AI와 국민안전, 탄소저감 제품이 많았다.
눈에 띄는 대목은 지정업체의 80%가 벤처기업이라는 점이다. 벤처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1%에도 못 미치지만 이번 지정에서는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술력을 갖춘 젊은 기업에 공공조달이 실질적인 성장 통로가 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우수제품으로 지정되면 기본 3년에 연장 3년을 더해 최대 6년까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제3자단가계약으로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재돼 수요기관이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 지난해 우수제품을 통해 공공조달시장에 공급된 규모는 4조 4000억 원에 이른다.
조달청은 내년 우수제품 심사부터 AI 심사분야를 새로 도입해 별도 심사체계로 AI 기술을 적용한 제품의 진입을 늘릴 계획이다. AI 스타트업에는 공공시장으로 들어가는 새 창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판로를 얻은 뒤에는 가격이 문제다. 조달청은 지난 26일 나라장터 쇼핑몰 등록 물품의 가격 적정성을 다시 점검하고 시중가격과의 비교·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등록 물품 가격이 시중보다 높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조달청은 공공조달의 목적이 무조건 값싼 제품을 사는 데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소·약자기업 보호, 기술개발 촉진, 국내 생산기반 유지, 사회적 가치 추구 같은 공익적 가치를 함께 구현하는 정책수단이라는 것이다.
실제 공공계약에서는 지나친 저가 경쟁에 따른 경영 악화와 품질 저하, 계약 불이행을 막기 위해 최저가 낙찰을 거의 쓰지 않는다. 적격심사에는 낙찰하한율을 적용하고, 쇼핑몰 물품 가격은 민간가격 가운데 최저가가 아닌 최빈가격을 적정가로 본다.
동시에 시장을 흐리는 고가 제품은 걸러낸다. 업체에 우대가격 유지 의무를 부과하고 세금계산서 확인과 시중가격 모니터링, 조달가격신고센터로 상시 점검하며, 위반하면 계약단가 인하와 부당이득 환수, 거래정지 조치를 한다.
조달청은 지난해 11월 19일 발표한 공공조달개혁방안에 따라 조달규격을 민간규격으로 최대한 바꾸고, 계약단가 이하에서는 업체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2027년에는 AI 기반 가격관리시스템을 가동해 시중가격과 조달가격 차이가 크거나 가격이 급변하는 품목을 조기에 잡아낼 계획이다.
지방정부가 지역 여건에 맞춰 나라장터 물품을 스스로 구매하는 조달 자율화도 올해 1월부터 경기와 전북에서 시범운영하고 있으며, 2027년에는 모든 지방정부로 넓힌다.
세 발표를 스타트업 입장에서 놓고 보면 공공판로 전략의 순서가 그려진다. 서류 준비에 들던 시간을 줄이고, 우수제품 지정으로 수의계약과 쇼핑몰 등재라는 안정적인 매출 통로를 확보하며, 기술과 품질에 맞는 가격을 인정받는 구조다.
최저가 경쟁에 밀려 연구개발 여력을 잃던 기술기업에는 수익성과 투자 유인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자에게도 우수제품 지정과 공공 납품 실적은 초기 기업의 기술력과 매출 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과제도 남아 있다. 기업확인서 공동이용은 기관별 승인이 끝나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어 실제 적용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적정가격 보장과 고가제품 퇴출이라는 두 원칙이 함께 작동하려면 AI 기반 가격관리시스템이 시중가격 변동을 얼마나 정교하게 잡아내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백승보 조달청장은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공공조달시장을 통해 성장하고 더 나아가 해외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판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지정제품의 품질·인증에 대한 관리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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